“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떠올리면, 그럴 수 없었어요.”
열두 살 아들의 엄마이자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던 김민서(41)씨는, 8번의 항암 치료 끝에 삶을 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올해 3월, 와이즈유 영산대학교 시니어모델학과에 새내기로 입학했다.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민서씨는 20대 초반, 이미 모델계에 발을 들인 이력이 있다. 2002년 국내 한 방송사의 슈퍼모델 대회 출전을 계기로 유명 모델 에이전시에 발탁됐고, 당시 신인이던 강승현과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했다.
174cm의 신장은 업계에서 큰 키는 아니었지만, 노력으로 부족함을 채웠다. 동대문 쇼핑몰 대표모델 무대에 서기도 했던 그는, 조혜련의 ‘아나까나’를 부르며 센스 있는 퍼포먼스로 여성 모델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남성 1위는 배우 김영광이었다.
이후 CF, 잡지, 웨딩쇼 등 다양한 무대를 소화했지만, 소속사의 해체로 모델 일은 자연스럽게 끊겼다. 대구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에게도 모델은 한때의 추억이 됐다.
그러나 작년 3월, 삶은 다시 비틀렸다. 유방암 3기. 치료는 고통스러웠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피부는 벗겨졌고, 얼굴은 붓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무대 위의 그가 아니었다. “화려한 무대를 떠올리면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우울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때 가장 큰 힘이 된 건 가족이었다. 아들 생각에 억지로 밥을 넘겼고, 말없이 곁을 지켜준 남편과 부모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서 어머니가 물었다. “다시 모델 하고 싶니?” 시니어모델학과 모집공고를 본 어머니는 딸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건넨 셈이었다.
그 말은 김씨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항암이 한창이던 8월, 병원에서 어렵게 외출 허가를 받아 우체국으로 갔다. 입학원서를 가족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직접 보냈다. “내일이 간절했기에, 내가 직접 보내고 싶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 선택은 행운이 되어 돌아왔다. 항암치료는 무사히 마무리됐고, 작년 12월에는 합격 통보도 받았다. 면담 당시, 머리카락이 없던 그는 교수 앞에서 모자를 벗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괜찮습니다. 잘 하실 거예요.”
이제 김민서씨는 새벽부터 일어나 수업을 듣는 대학생이자, 다시 꿈을 향해 걷는 모델 지망생이다. “같은 꿈을 가진 동기들과 수업을 듣고, 교수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너무 즐겁다”며 “단순한 워킹 수업을 넘어서 마케팅, 콘텐츠 제작, 헤어·메이크업까지 배우는 게 무척 흥미롭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신의 꿈을 아들과도 나누고 싶어 한다. “엄마가 모델이라는 걸 아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다”며 “기회가 된다면 무대뿐 아니라 강단에서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